Monday, April 30, 2018

최저임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최저임금에 대한 보수언론들의 주요 궤변 검토)

(본래 블로그 운영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모종의 계기로 블로그를 연 김에 앞으로 종종 글을 올려볼까 합니다. 일단 첫 스타트로, 작년 말쯤 모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 두 편을 올립니다.)



프롤로그인권법으로서의 최저임금제재분배정책으로서의 최저임금제


경제학에서 ‘수요독점자’란 개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슈퍼 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최저임금제는 이 수요독점자가 장악하고 있는 노동시장에서 가장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자리가 부족한 상태에서 취준생들이 취직하려고 저마다 앞다퉈 임금을 낮춰 부르는 ‘바닥을 향한 경쟁’이 일어나는 상황이 바로 전형적인 수요독점 노동시장입니다.
기업이 고용을 하는 것은 피고용인이 생산하는 가치가 피고용인의 임금을 상회할 때입니다. 수요독점 시장에서는 임금이 피고용인이 생산하는 가치보다 훨씬 낮은 선에서 책정되기 때문에, 최저임금제 같은 방식으로 임금을 피고용인의 생산 가치 수준으로 올려도 고용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확실히 수요독점시장이기는 합니다. 누가 수요독점자일까요? 네, 바로 재벌들이죠. 그런데 문제는, 재벌들이 노동시장에 직접 참여한다기보다는, 하청이나 아웃소싱 같은 형태로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즉 재벌에 납품하는 하청시장이 수요독점시장이지, 정작 고용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하청업체들은 재벌들에 이윤을 다 빨려서, 즉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저임금을 주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시장에 최저임금 인상을 섣불리 강요하면 부작용이 클 것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은 반드시 중소기업 지원책 등과 병행해 실시돼야 합니다. 그리고 그 궁극적인 타겟은 재벌이 돼야 합니다. 슈퍼 갑인 재벌들이야말로 우리나라의 분배구조를 악화시키는 주범이기 때문이죠. 현재 문재인 경제팀은 이 노동자-중소기업 지원 양면작전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려는 문제의식과 의지가 보이기에 상당히 믿음이 갑니다. 관건은 재벌 측의 완강한 저항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뿌리칠 수 있느냐겠죠.

최저임금제는 하나의 독립된 정책이 아니라우리나라의 다층적인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동시다발적으로 시행해야 할 여러 정책의 일환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왜 최저임금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재벌들이 그토록 핏대를 올려 가며 이에 반대하는지도 알 수 없고, 이 제도가 가진 중요성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며, 이 정책과 다른 경제정책들 사이의 상호의존성도 간과하게 됩니다. 경제는 대단히 복잡하고 상호의존적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한 부분만 딱 떼어내서 보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습관입니다. 항상 전체를 봐야 합니다.

적정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은 간접적인 고용 진작 효과를 가져옵니다. 저소득 노동자의 수입 증가로 인한 사회적 총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저소득층은 고소득층에 비해 수입의 대부분을 지출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는 정책이 일반적으로 수요진작효과가 훨씬 큽니다.) 이것이 최저임금이 재분배정책으로서 지니는 핵심적인 효과로서, 각국의 정부들이 최저임금 정책을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최저임금제는 효과적인 재분배정책이기 이전에 기본적인 인권법으로서도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최저임금제의 기본적인 정신은 “누구도 다른 사람을 노예처럼 함부로 부릴 권리가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죠. 기본적으로 사람값이 너무 싸면 고용주들은 거리낌없이 노동자를 장시간 혹사시키게 됩니다. 장시간 노동은 그 자체로 고용시장을 축소시키고, 고용시장이 축소되면 노동자 간 경쟁이 격화되고, 임금은 더욱 하락하는 악순환까지 발생합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삶은 완전히 파괴되겠죠.

일단 최저임금제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은 이 정도로 하고, 제가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계기인, 최근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보수언론(저는 개인적으로 ‘보수언론’보다 ‘재벌언론’이란 표현을 더 선호합니다. 그들의 본질과 지향을 더 잘 보여주기 때문이죠.)들의 왜곡된 비판들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근래 들어 보수 기득권 세력의 황당무계한 공세가 눈 뜨고 보기 힘든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는데도 이에 대해 제대로 지적을 하는 글들은 별로 보이질 않더군요.

일단 가장 핵심적인 질문부터 던지고 시작하겠습니다.
재분배정책으로서 최저임금 상승은 과연 효과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있다’입니다. 하지만 그 효과가 발휘되는 기제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최저임금 상승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이를 이용한 보수언론의 왜곡 선동이 나오고 있는 듯합니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느끼기에 가장 자주 나오는 대표적인 최저임금 비판론 4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질문 1: 최저임금을 올리면 자영업자나 영세기업들이 망하고, 이들이 망하면 일자리가 줄어서 결국 최저임금을 안 올리느니만 못한 결과가 초래된다는데 사실일까?

질문 2: 최저임금을 올리면 물가도 상승하기 때문에 노동자 입장에선 결국 좋을 게 없지 않은가?

질문 3: 최저임금 상승을 비롯한 각종 재분배정책은 경제성장을 억제하며 시장을 교란하기 때문에 득보다 실이 많은, ‘악한’ 정책이 아닌가?

질문 4: 재분배정책은 근로의욕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

질문 1: 최저임금을 올리면 자영업자나 영세기업들이 망하고, 이들이 망하면 일자리가 줄어서 결국 최저임금을 안 올리느니만 못한 결과가 초래된다는데 사실일까?

-> 답변 요약: 아니다. 고용주들이 상품가격을 올리는 것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증가분을 실질적으로 부담하게 될 이들은 소비자들과, 경제적 먹이사슬에서 ‘포식자’ 기업들이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재분배정책으로 분명히 효과가 크다.









보수언론, 특히 경제지들에선 최저임금 올리면 자영업자이나 영세기업들이 다 망한다고 주장합니다. 허나 이는 상당한 과장입니다. 개인적으로 경제지 기자들 몇 명 아는데 경제학에 전혀 문외한인 사람들이 의외로 꽤 많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기사에는 경제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심각하게 결여된 경우가 적지 않죠.

프롤로그에서 살펴봤듯이, 기본적으로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 일자리를 얻기 위해 서로 임금을 깎는 이른바 ‘수요독점 노동시장’에서는 임금이 노동자의 생산 가치보다 현저하게 낮은 수준에서 책정이 됩니다. 따라서 임금을 좀 올리더라도 기업에서 고용을 마다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수요독점이 일어나고 있는 부문과 고용이 일어나고 있는 부문이 분리돼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그러면 과연 영세기업들 망한다는 보수언론들의 주장이 맞는 걸까요?

아닙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상품 가격을 올리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네네, 무슨 생각하시는지 압니다. '허허, 이 양반 말 참 쉽게 하시네. 상품 가격 올리면 누가 사간다고 이사람아!'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혼자 가격 올리는 건 사업 망하는 지름길이겠죠. 하지만 최저임금 상승은 전국적으로 일제히 강제되는 것이라 전국의 모든 관련 고용주들에게 동일한 수준의 이윤 창출 압력이 가해지기 때문에 경우가 다릅니다. 처음에는 서로 눈치를 보느라 주저하겠지만, 결국 하나 둘 가격을 올리는 업체가 생겨나면 다른 업체들도 일제히 그 뒤를 따르게 돼 있습니다. 일종의 담합 효과가 생기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그 상품의 고유한 수요가 있는 한 가격이 약간 올랐다고 해서 그 상품에 대한 최종 수요가 크게 줄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담뱃값을 어느 날 한 가게에서 갑자기 5% 올리면 다시는 그 가게에 안 가겠지만, 전국적으로 일제히 담뱃값이 5% 인상되면 인상한 개별 가게들은 큰 타격이 없고, 5% 올랐다고 담배 끊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가격은 다음과 같은 선에서 조정될 겁니다.

조정된 상품가격(P2) = 원래의 상품가격(P1) + 최저임금 인상분(W) - 상품가격 상승으로 인한 수요감소분(D)
(여기서 W > D 이기 때문에(이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논의) P2 > P1이 됩니다. 즉 상품가격이 인상되는 것이죠.
여기서 ‘상품가격 상승으로 인한 수요감소분’은 고용주가 조정된 국면에서 최적 수준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양보해야 할 가격 액수를 가리킵니다.)

즉, 10000원짜리 상품을 파는데 최저임금 상승으로 1000원어치의 가격상승압력이 주어지면 가격은 일단 11000원이 되겠지만, 가격이 인상된 만큼 수요도 다소 줄어들 것이므로 최종 가격은 10000~11000원 사이의 어느 지점이 되겠죠. 중요한 점은, 최종가격이 10000원보다는 11000원에 훨씬 근접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바로 상품가격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가격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50%이고, 임금상승률이 10%라고 하면, 임금은 10% 상승했지만 실제 물건 가격은 10% * 50% = 5%밖에 상승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상품에 대한 수요를 결정하는 가격 인상 비율은 임금 인상 비율보다 반드시 낮기 때문에 임금 인상분을 상품가격에 그대로 반영해도 수요는 임금인상률에 비해 적게 감소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상품가격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할 때 전 단계의 임금까지도 다 포함해서 계산해야 한다는 점이죠. 예컨대 치킨집에서 만원짜리 치킨 한 마리 만드는 데 인건비가 2천원씩 든다고 칩시다. 그러면 치킨값 만원 중 인건비는 20%에 불과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치킨을 만드는 데 드는 재료비에도 전부 인건비가 포함된 것이고, 그 재료의 재료를 만드는 데도 인건비가 포함돼 있죠. 따라서 치킨 가격 중 순수하게 임금 이외의 부분으로 칠 수 있는 건 지대, 이자, 이윤 정도에 국한되겠죠. 하지만 이렇게 비 임금 부문의 범위를 축소하더라도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체로 절반 정도밖에 안 될 겁니다(참고로 우리나라 GDP에서 이른바 ‘불로소득’으로 분류되는 소득 비중이 절반 정도 됩니다.).
게다가, 지금 우리가 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임금 전체가 아닌 최저임금입니다. 전체 임금지급액 중에서도 최저임금만 받는 노동자에 대한 임금지급액 비율은 상당히 낮기 때문에, 최저임금 상승이 상품의 최종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최저임금 상승 비율보다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는 거죠.

예컨대 최저임금 인상률이 20%이고, 10000원짜리 상품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총 비중이 60%이며, 이중 최저임금노동자의 임금 비중이 50%라고 하면, 상품 가격 인상률은 20%*60%*50%=6%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고용주가 임금인상분의 전부를 가격에 반영하더라도, 가격인상률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상품에 대한 수요 감소도 그만큼 적고, 따라서 고용주는 종전의 이윤 대부분을 보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최저임금 상승으로 고용주가 최종적으로 입을 이윤 손실은 위의 공식에서 '상품가격 상승으로 인한 수요감소분(D)'으로 국한됩니다. (그리고 아래에서 보겠지만 이마저도 사회적 총수요 증가로 또 만회됩니다.)

재분배정책으로서 최저임금제의 본질은 사회에서 주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이 공동으로 최하층 노동자를 지원하는 제도

자, 그럼 이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고용주들에게 최저임금 상승의 충격은 대부분 가격인상분으로 흡수되기 때문에 이윤면에서 타격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노동자의 최저임금 상승분을 최종적으로 지급하게 되는 것은 고용주라기보다는 소비자인 셈이죠. 즉 고용자와 소비자가 최저임금 상승분을 공동 부담하지만, 소비자가 부담하는 몫이 훨씬 크기 때문에 고용자가 받을 타격이 상당히 완화된다는 점입니다.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업체는 상당수가 경제적 먹이사슬에서 최하단에 위치한 기업들이므로, 재분배정책이란 측면에서 최저임금은 최하단 노동자의 소득 상승 + 최하단 기업의 이윤 보전이란 측면에서 확실한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셈이죠. 게다가, 가격이 상승하면 지출은 주로 저소득층에서 집중적으로 감소하고 고소득층의 지출은 상대적으로 덜 줍니다. 즉 최저임금 상승분의 대부분을 소비자가 부담하게 된다고 했는데, 이중에서도 고소득 소비자의 부담 비율이 증가하게 되는 셈입니다. 요컨대 최저임금 상승의 효과는 결국 상대적으로 소득이 많은 소비자가 최저임금 노동자에게 임금상승분의 대부분을 지급하게 되는 구조라는 거죠. 이보다 더 확실한 재분배정책이 어디 있습니까?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상승을 빌미로 가격을 인상하는 업주에 대해 임금비용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행동이라 비판하는데, 여유가 있으면서 노동자를 부당하게 착취하고 있는 업주에게라면 타당한 비판이겠지만, 여유가 없어서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오히려 가격을 상승시키는 것이 더 정의로운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저소득층의 수입이 증가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소비가 늘어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수입 대 지출 비율이 고소득층보다는 저소득층이 더 높기 때문이죠. 따라서 고용주 입장에서는 가격인상으로 인한 수요 감소(그리고 여기에 따른 이윤 감소)의 일부는 다시 저소득층 수입 상승으로 인한 사회적 총수요의 증가로 만회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가격은 흔히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듯 수요-공급의 완벽한 균형을 통해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습관이나 권력관계 등 여러 가지 변수에 크게 좌우되죠. 즉 최초의 가격 10000원 자체가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수요-공급 균형을 통해 도출된 가격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이 인상되면 수요-공급 균형이 깨져 원래 가격으로 회귀할 압력이 강할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은 가격 결정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다소 과장된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최저임금 지원금 지급 정책의 필요성과 한계 (재벌은 왜 최저임금 인상을 싫어하는가)

단, 여기서 주의할 점은궁극적으로 봤을 때는 최저임금이 자영업자나 영세 기업들에 타격이 그다지 없다고 하더라도실제로는 조정국면에서 영세 고용주들에게 상당한 압박이 들어가게 된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과정에서 대처 제대로 못 하면 도산 위기를 맞는 기업들도 많겠죠. 자영업자들의 경우는 초기의 ‘가격 누가 먼저 올리나’ 눈치게임만 무사히 넘기면 그나마 좀 나은데, 원청에 대해 절대 을의 입장에 있는 하청업체들이 특히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하청업체들은 함부로 원청에 가서 ‘최저임금이 올라 이윤압박이 심해졌으니 납품단가 좀 올려야겠습니다’하고 말하기가 어려운 처지죠. 바로 이러한 상황들 때문에문재인 정부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병행해 해당 기업들에 최저임금 지원금을 지원하기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이러한 정책은 당연한 것이라고 봅니다. 사실 문재인 정부의 경제팀은 지금까지 제가 보아온 어떤 정부보다도 더 경제문제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를 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상당히 신뢰가 가는 편입니다. 제가 최저임금 지원금에 대한 문재인 경제팀의 정책 동기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 정책은 조정국면에서의 혼란에서 생길 여러 부당한 피해들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선별적이고 한시적으로 이뤄질 것입니다. 또 그래야만 하고요. 왜냐하면, 이 지원금은 자칫 장기화할 경우 최저임금 인상의 재분배정책으로서의 의미를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왜 전경련 같은 재벌 단체들이 핏대를 올려 가며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어차피 재벌 노동자들은 거의 다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고 있으니 직접적인 해당이 없는 것 아닌가요? 그럼 그들이 정말로 영세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처지를 걱정해서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걸까요? 물론 아닙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이윤에 여유가 없는, 경제적 먹이사슬에서 말단에 있는 기업일수록 가격 인상 압박을 강하게 받고, 이윤에 여유가 있는 (이런 기업들은 노동자나 하청업체에 대한 착취를 통해 이윤을 늘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상위의 ‘포식자’ 기업들일수록 가격 인상 압박을 약하게 받게 됩니다. 상위 기업일수록 무리하게 가격을 올려 매출에 타격을 받느니 그냥 이윤 수준을 조금 줄이는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해지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담합 효과와 관련이 있습니다. 가격 인상에 대한 담합 효과는 이것 말고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하위 기업들에서는 강하게 나타나지만이윤이 많은 상위 기업들은 여전히 다른 기업들과 가격경쟁을 해 나갈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에 가격인상 관련 담합이 이뤄지기 쉽지 않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상위 기업들은 가격을 올려서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지도 못하고, 하위 기업들을 더 이상 쥐어짜기도 어렵게 되어 자신들의 이윤을 줄여가면서 최저임금 인상 금액 대부분을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결국 ‘포식자’ 기업들이 자신들의 여유 이윤으로 (하청업체들의 납품물을 종전보다 비싸게 사줌으로써) 사실상 하위 기업들의 최저임금을 부담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재벌들은 이게 싫은 겁니다. 하지만 역으로, 그만큼 최저임금 인상은 재벌들의 부당 착취 이윤을 아래로 강제로 흘려보내는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재분배정책으로서 의의가 명확합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하위 기업들에 최저임금 지원금을 지급하면 어떻게 될까요? 하위 기업들이 상위 기업에 대한 납품단가를 인상해야 할 압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결국 상위 기업들이 지급했어야 할 최저임금 인상분을 정부가 세금으로 대신 내주는 꼴이 되는 겁니다. 결국 재벌들에 대한 간접적인 지원책이 되는 셈이죠. 물론, 세금은 고소득층일수록 많이 내는 것이고, 정부가 최저임금 지원금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세금을 올려야 할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최저임금 지원책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결국 부를 고소득자로부터 저소득자로 이전하는 효과를 지닌 재분배정책이긴 합니다. 더 안정적인 정책이라는 것도 장점이고요. 하지만 재벌들의 부당 착취를 직접적으로 견제하는 효과는 훨씬 미미하다는 점이 단점이겠죠.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최선의 해결책은, 정부가 기업들이 겪는 스트레스와 혼란을 줄이기 위해 한시적으로 최저임금 지원금을 지원하되, 그냥 지급하기만 해서는 기업들이 그 상황에 안주할 수 있으므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서 원청 기업과 하청 기업 간의 가격 조정 협상을 진행하고, 협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비로소 지원금을 중단하는 것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실업을 늘리는가?

위에서도 썼듯이, 고용자측에서 가격인상을 통한 대응이 가능한 경우에는 종전수준에서 약간만 손해를 보는 선에서 이윤을 유지하는 게 가능한데다, 소비 진작 효과까지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실업률에 미미한 수준 이상의 영향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실업률을 낮출 가능성도 크다고 봅니다. 그리고 설령 실업률이 다소 높아진다 하더라도, 최저임금 노동자가 임금상승 또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얻게 될 편익에 비하면 조그마한 수준이겠죠.) 단, 일시적인 영향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식당을 예로 들어보면, 조정국면에서 남보다 먼저 가격 올리는 데 부담을 느낀 업주들 중에는 종업원을 해고하고 자신이 직접 허드렛일까지 다하며 버티려 하는 분도 있겠죠. 하지만 막상 일손을 줄이고 혼자서 일을 해 보면 무지막지하게 힘들 겁니다. 결국 항복하고, 다시 사람을 고용해 쓸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신 음식 가격을 좀 올리거나, 이전에 저임금 시절에는 마음 놓고 하루종일 종처럼 부리던 종업원의 노동시간을 좀 단축해 임금을 아끼는 방식으로 이윤을 만회하려 할 가능성이 높죠. 종업원 입장에서는 결국 최저임금 상승이 소득 상승으로 귀결되거나종전과 동일한 소득을 올리면서도 더 짧은 시간을 일하게 되거나일 터인데어느 쪽이든 이전보다 이득입니다.
조정국면에서 소비자들의 심리적 저항감으로 인한 일시적 실업률 상승도 가능합니다. 아파트 경비원 같은 경우를 예로 들어 봅시다. 요즘 보수언론들은 임금 인상에 저항감을 느낀 주민들이 경비원을 해고하고 무인경비시스템으로 갈아타는 동네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있죠? 하지만 이러한 경비원 해고가 정말로 순수하게 최저임금 인상의 경제적 효과 때문에 일어났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저는 두 가지 이유로 아니라고 봅니다. 첫째는, 기계의 인간 대체는 현재 임금수준과는 무관하게 전세계적으로 계속 일어나고 있는 대세적 현상이고, 둘째는,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경비원을 해고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주민들의 판단은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심리적인, 즉 비합리적인 이유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전혀 다른 차원의 해결책이 필요한 문제라(이에 대한 글도 조만간 한 편 쓸 생각입니다.) 여기서는 논외로 하고, 둘째 이유에 주목합시다. 수백 가구가 사는 아파트에서 경비원 한두 명의 임금이 조금 올랐다 해서 개별 주민들의 지출 수준이 크게 증가하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정 부담스러우면 노동시간 단축 등의 해결책도 있는데, 10% 임금인상 때문에 기존에 받던 인간 경비원의 서비스를 100% 포기하고 아직까지는 못 미더운(이게 미더웠다면 이미 대부분의 아파트가 무인경비원을 채택했겠죠) 무인경비시스템으로 갈아타는 것은 아무래도 극단적이고 경제적으로도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입니다. 주민들에게 특정한 심리적 요인이 없었다면 과연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제가 봤을 땐 보수언론들에서 최저임금 인상 자체를 비윤리적이고 ‘악한’ 정책으로 연일 비난하기 때문에 보수 성향 주민들이 많은 동네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의 수혜를 받게 될 경비원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생겨 ‘괘씸죄로’ 그런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만일 언론들이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합리적으로 설파하고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했으면 경비원 해고’ 같은 결정도 이뤄질 가능성이 훨씬 줄었겠죠(기레기들이 악마인 이유가 또 하나 추가됐네요.;;)
(이상의 추정은 그저 제 상상일 수도 있고, 실제론 주민대표가 무인경비업체 뇌물을 받고 적당히 구실을 만들어 경비원을 해고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가 저런 ‘소설’을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가격이 얼마나 심리적인 요인들에 크게 좌우될 수 있는지를 이해시켜 드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파트 경비원의 사례에서 보듯이, 가격결정은 합리적이기보단 심리적인 요인에 좌우되는 면이 상당히 큽니다. 즉, 경비원 사례를 뒤집어서 생각하면, 일단 사람들이 인상된 최저임금, 그리고 그에 따른 인상된 가격에 익숙해지면 그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도 사라지기 때문에 소비도 상당한 수준으로 회복될 겁니다. 경비원 임금이 비싸다는 선입견이 일단 사라지고 나면, 임금이 유의미하게 소비자에게 부담을 줄 정도로 급격하게 오르지 않는 이상, 그들의 고용수준은 이전과 크게 차이가 없을 거란 얘기죠 (있다면 기술발달 등의 다른 요인 때문일 공산이 큽니다).




질문 2: 최저임금을 올리면 물가도 상승하기 때문에 노동자 입장에선 결국 좋을 게 없지 않은가?

보수언론들이 예전부터 앵무새처럼 반복해 오던 대표적인 궤변 중 하나가 바로 ‘임금이 오르면 물가도 덩달아 오르기 때문에 임금이 오르나 마나다’는 주장입니다. 사실 이건 너무나 뻔한 거짓말이라서 별로 반박할 가치도 못 느끼지만, 여전히 여기 속는 분들이 종종 보이기에 굳이 반박을 하자면, 위에서 여러 번 설명했듯이 임금상승률은 그것이 초래하는 물가상승률보다 반드시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연히 노동자에겐 이득입니다. 즉, 우리나라의 모든 소득 중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예컨대 노동소득 비중이 50%고 노동자 임금이 10% 인상된다고 하면,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오르는 물가 수준은 10% * 50% = 5%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노동자들 입장에선 결국 5% 이득을 보는 셈이죠.
최저임금 인상의 경우는, 그 이득의 실질적인 폭이 훨씬 커집니다. 이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때문인데, 저소득층일수록 동일한 액수의 돈이 가져다주는 더 큰 거죠. 최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이 1000원 오르는 건 평균소득 노동자의 임금이 1000원 오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만족도를 가져오는 반면, 1000원은 절대적인 액수로는 큰 금액이 아니기 때문에 물가 상승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합니다.

합리적 경제정책이란, GDP의 절대 액수를 늘리는 게 아니라 사회적 총편익을 늘리는 정책입니다. 100만원 가진 사람이 20만원 가진 사람에게 40만원을 나눠준다면, 둘이 지닌 절대적인 액수에는 변화가 없지만 둘이 지닌 편익의 총합은 극대화됩니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우선적으로 늘리는 것은 그 자체로도 사회적 총편익을 크게 늘리는 활동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기준으로 합리적인 정책입니다.




질문 3: 최저임금 상승을 비롯한 각종 재분배정책은 수출경쟁력과 경제성장을 억제하며 시장을 교란하기 때문에 득보다 실이 많은, ‘악한’ 정책이 아닌가?

‘경제성장’과 ‘수출’은 지난 수십 년 간 우리나라의 보수언론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온 마법의 단어입니다. 그런데 정작 일반인들 중에 ‘경제성장’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아 보입니다. 그저 GDP 성장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죠.
경제활동이란 그저 돈 버는 활동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유용한 가치를 생산하는 모든 활동을 가리키죠. 예컨대 밥 먹는 행위나 방귀뀌는 행위도 그 행위를 통해 사람들의 행복이 증진되기 때문에 경제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 개인적인 활동들은 학문이나 대화의 주제로서 가치가 별로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에게 쓸모있는 일을 하는 사회적 활동을 가리키죠.
경제가 성장한다는 건그 사회에서 구성원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활동이 점점 늘어나는 걸 가리킵니다. 오랫동안 재벌(수출대기업)들과 결탁한 언론들에 세뇌된 우리나라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경제성장 = 수출증대 = 무역흑자’라는 등식이 각인돼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향상시키는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대부분 내수산업입니다. 수출산업은 외국의 자원이나 상품을 획득하기 위한 거래 수단으로 봐야지, 그것이 내수산업과 제대로 연계되지 않으면 국민들의 삶이 향상되는 데는 상당한 한계가 있습니다.
왜 시장경제가 도입된 이후 인류의 생활수준이 극적으로 향상됐을까요? 그것은 중세의 착취 경제에 비해, 시장경제는 엄청난 수준의 ‘경제민주화’를 이룩했기 때문입니다. 중세에는 영주가 부를 강제로 독점했기 때문에 사회의 생산력이 오직 영주 1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낭비됐습니다. 하지만 시장경제가 들어서자 이제 누구나 돈만 있으면 타인에게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달라는 주문을 하는 게 가능해진 겁니다. 사회의 생산력이, 그야말로 사회의 모든 성원들에게 ‘쓸모있는’ 가치를 창출하는 데 쓰이기 시작한 것이죠.
수출을 아무리 해도, 수출을 통해 번 소득을 소수의 수출대기업이 독점하고 있으면 중세 경제와 별로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국내의 저임금 착취에 기반한 수출 산업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19세기 인도나 아일랜드의 대기근, 일제시대 우리나라의 식민지 경제구조 등은 수출산업과 내수산업의 연계가 끊어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들입니다. 인도를 예로 들어 보죠. 19세기 인도는 식민지 종주국인 영국에 비해 주민들이 월등히 가난했기 때문에 내수시장 규모가 형편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인도의 무역업자들은 식량을 생산하던 인도의 농지를 영국에 수출할 상품작물을 재배하는 용도로 대거 변환시키고, 인도인들에게 거지나 다름없는 수준의 임금을 주어 가며 수출용 작물을 재배해서 영국에 내다 팔아 막대한 이익을 남겼습니다. 떼돈을 번 수출업자들은 그럼 그 돈을 어떻게 썼을까요? 인도 내에서는 거의 한 푼도 안 쓰고 영국의 사치품을 사는 데 몽땅 써 버립니다. 식민지 지배층에 의한 저임금 착취가 만연하던 인도 내에서는 도는 돈이 없다 보니 이렇다할 만한 산업도 일어나지 못했고, 따라서 수출업자들이 수출을 통해 돈을 잔뜩 벌어 봤자 인도 내에서는 쓸 곳이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수출용 작물에 우선순위가 밀린 인도의 내수용 식량 생산은 점점 감소했고, 급기야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임금 착취에 기반한 수출산업은 내수시장의 성장을 가로막아 둘 사이의 격차를 점점 벌리고, 결국 인도처럼 주민들의 생활 향상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수출산업으로 벌어들인 돈이 활발하게 내수시장에 흘러들어오도록 유인하는 정책이 필요하고, 그게 바로 재분배정책인 것입니다.
시장 경제에서 돈은 사회의 생산력을 자신을 위해 써 달라는 경제적 투표권입니다. 이 투표권이 국민들 모두에게 골고루 주어질 때,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고 사회가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질문 4: 재분배정책은 사람들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별로 그렇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사회의 총 근로의욕을 높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인간의 근로의욕은 소득에 정비례하지 않고 소득이 많을수록 동일한 금액이 근로의욕에 기여하는 바가 점점 줄어듭니다. 월급 100만원인 사람은 100만원을 더 벌기 위해 죽어라고 일하겠지만, 1억인 사람은 100만원 때문에 더 일하느니 노는 편이 낫겠죠. 따라서 고소득자로부터 세금을 좀 걷더라도 고소득자의 근로의욕에는 변화가 적은 반면, 그 돈으로 저소득층을 지원하면 거기서 발생하는 직접적인 효용이 매우 크기 때문에, 여기서 벌써 재분배정책의 편익이 비용을 능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재분배정책의 편익이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란 점입니다. 재분배정책의 수혜를 입은 사람들은 그 돈으로 시장에 나가서 새로운 소비를 하는데, 이 소비가 생산자들의 근로의욕을 새롭게 자극합니다. 게다가 아니라 고소득자 1인으로부터 거둔 세금으로 더 많은 이들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때 하는 소비는 고소득자가 아닌 사람을 상대로 이뤄질 확률이 높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금전적 보상이 근로의욕에 끼치는 영향은 저소득층이 훨씬 큰데, 고소득자 1인에게서 거둔 세금으로 저소득자 여러 명의 근로의욕을 자극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이전보다 훨씬 더 경제적으로 생기 있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혹자는 고소득자들은 대개 책임이 큰 직책을 맡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의 기분 변화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책임 수준이 낮은 저소득자 여러 명보다 더 크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이미 돈의 가치가 낮아질대로 낮아진 사람들에게 금전적 보상을 통해 근로의욕을 북돋는다는 것은 대단히 비효율적인 발상입니다. 그들에게 저소득층 수준의 동기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천문학적 수준의 돈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명예심을 자극한다든지 법적인 수단을 동원한다든지 하는 좀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그들의 근로의욕을 유지시키는 방안을 강구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겠죠.


에필로그달에서 파인애플 먹기자본주의 버전

가상의 두 나라, 떡국과 김치국이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인구가 100명입니다.

떡국 주민들은 전원이 1인당 100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습니다.
반면 김치국 주민들은 한 사람이 2억 원의 소득을 올리고 나머지 99인은 10만원씩 벌고 있습니다.

둘 중 어느 나라가 더 행복할까요? 총 GDP는 김치국이 높지만, 총 효용은 떡국이 월등히 높습니다. 따라서 떡국이 더 행복한 나라라 할 수 있죠. 하지만 그게 다일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 당장은 떡국이 더 행복하지만, 잠재력은 김치국이 월등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김치국의 부를 재분배하기만 하면, 떡국보다 높은 수준의 효용에 도달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김치국의 잠재력을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다면, 그 잠재력은 부도난 수표처럼 공허하고 무의미할 뿐입니다.

후쿠야마가 공산주의를 비판하면서 ‘달에서 파인애플 먹기’란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언젠가 우리가 달에 가서 한가로이 과일을 먹고 노닐 수 있는 낙원을 약속하지만, 그것이 도대체 언제냐는 것이었죠. 아이러니하게도 이 비판은 자본주의에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합니다. 이전 세대의 수많은 한국인들이, 불평등과 부정의를 감수하고도 개발 독재 시대부터 이어진 성장 제일주의를 감내했던 이유는 분배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도대체 언제일까요?

가만히 앉아만 있는다고 분배가 저절로 일어나진 않습니다. 혹자는 불평등은 유효수요 부족을 초래해 자본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스스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분배에 능동적으로 나선다고 주장하지만, 제가 봤을 때 이건 지나친 낙관입니다. 솔직히 최상위 기득권들은 자신들이 등 따시고 배부르기만 하면 자본주의가 붕괴하든 말든 별 상관 안합니다. 자본주의가 붕괴해 다시 중세 봉건 시대처럼 극소수 지배층이 부를 독점하고 그 결과 경제가 전반적으로 후퇴하는 시대가 와도 그들로선 나쁠 게 별로 없으니까요. 20세기 자본주의가 여러 차례의 자기변신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자본주의 자체가 스스로 분배에 관심 있었다기보다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공산주의의 자극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자체가 이전 시대보다 성공적일 수 있었던 건, 앞서도 말했듯이 시장이 일종의 ‘경제민주화’ 기능을 수행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시 기준으로 그렇다는 거지, 시장을 마냥 방치해 두면 부익부빈익빈을 심화시켜 경제독재의 온상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죠.)

따라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분배정책에 나서야 합니다. 경제성장 정책은 분배정책과 연계될 때에만 제대로 의미를 가질 수 있고, 최저임금 등의 재분배정책은 그런 의미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