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pril 30, 2018

일자리를 통한 분배의 시대는 끝났다 (민주주의, 인권, 그리고 안철수가 4차산업혁명에 무지한 이유)

(이 글 역시 작년에 모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인데 블로그 개설기념으로 다시 올립니다.)


저는 인공지능 혁명을 가리켜 ‘4차산업혁명’이라 부르는 것에 기본적으로 반대합니다. 우선 그 중요도가 고작 기계혁명이나 전기혁명, 정보화혁명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인데다가, 인류의 삶 전반에 걸쳐 근본적이고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현상에 대해 단지 ‘산업적 측면’에서만 관심을 두는 근시안적 시각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입만 열면 ‘4차산업혁명’을 외치는 안철수야말로 그러한 근시안적 태도를 보이는 전형적인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인공지능 혁명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혁명입니다. 그것이 인류의 삶에 초래할 변화는 산업혁명은 물론이고 심지어 농업혁명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클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인간의 노동이 기계로 완전히’ 대체될 것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간의 사회관계와 경제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장차 가장 시급한 과제일 것입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류의 기본적인 분배 모델은 생산 활동에 참여하고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즉 일자리를 통해 분배가 이뤄졌다고 할 수 있죠. 인간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생산 도구였고, 그래서 존중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등장은 이러한 경제적, 사회적 관계를 뿌리째 뽑아 버립니다. 기계가 혼자 알아서 모든 생산을 다 할 수 있으면, 다른 인간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실제로 인류학은 인간에게서 도구적 가치가 제거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무수한 사례들을 보여줍니다. 사회적 분업이나 공동 생산 활동이 거의 없던 수렵 채집 시대에는 오로지 학살을 목적으로 한 부족 전쟁이 일상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다른 부족 사람들은 경제적 협력자가 아니라 밥이나 축내는 존재였기 때문이죠. 농경 시대에 들어서야 사람들은 포로를 죽이기보다 노예로 삼는 편을 선호하게 됐는데, 이는 포로를 식량이나 거름보다는 농경 도구로 사용하는 편이 이익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인류사에서 인권과 평등의식이 확장된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대규모 전쟁인 경우가 많았는데, 머리수가 중요한 전쟁에서는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전쟁 도구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됐기 때문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당장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생산에 기여하지 못하는 사람(예컨대 백수)들은 천대를 받습니다.

하지만 미래는 인간이 일을 해서 생산을 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기계즉 자본이 생산을 하는 시대죠따라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일자리를 통한 분배 모델은 폐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 자본을 직접 분배하거나, 생산물을 직접 분배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핵심은, 새로운 공존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새 공존 모델 창출에 실패하면 극소수 기술 엘리트를 제외한 인류 대부분이 생존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비극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공존 모델이 제대로 만들어지려면 굉장히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바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이죠.

안철수 같은 류의 사람들이 간과하는 게 바로 이 지점입니다. 안철수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의 생각은 명확합니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기술 경쟁에서 선도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IT부문 육성에 사회의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의 관심은 온통 산업적, 생산적 부분에만 치우쳐 있지, 인공지능혁명이 초래할 사회적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고민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미래산업을 육성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일자리가 앞으로 생길 분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결여돼 있습니다. (일자리에 대한 강조는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지만, 안철수와 문재인의 일자리 정책에 대한 태도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주된 관심사는 부의 재분배이고, 일자리 정책은 그 일환으로 지금 당장 기본소득제 같은 보다 급진적인 재분배 정책을 추진하기에는 시기상조이기 때문에 일종의 분배 정책 내지는 경제적 소외층 구제책으로서 추진하는 성격이 강합니다. 공무원 증원 같은 경우가 이러한 사고를 반영하죠. 하지만 안철수의 일자리 정책은 표현만 일자리 정책이지 사실은 기업 지원 정책입니다. 일자리에 대한 언급은 그의 기업 지원책에 대한 대중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고 봅니다. 쉽게 말해 ‘나 같은 IT기업인들을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너희들 일자리도 늘어난다.’는 식이죠. 자동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지금 기업을 아무리 지원해 봐야 일자리 감소 추세를 돌이키기가 어렵다는 점을 모를 리 없는 그가 이런 주장을 하니 정치적 수사라고 보는 겁니다.)

안철수식 사고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미래는 생산이 문제가 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산력은 남아돌죠. 오히려 분배가 문제고 경제권력 집중이 문제가 되는 시대입니다. 당장 나와 있는 기술들을 좀 가다듬기만 해도, 현재 존재하는 대부분의 일자리, 아니 경제 활동이 필요 없어집니다. 예컨대 집집마다 3d 프린터와 인공지능 공작 로봇 하나씩만 갖춰 놔도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터넷에서 설계도 하나 클릭하는 것만으로 필요한 거의 모든 물품을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게 됩니다. 개나 소나 도깨비 방망이를 가진 셈이 되는 거죠. 이렇게 되면 공장도 필요 없어지고, 가게도 필요 없어지고, 운송도 필요 없어지고, 사람들 사이의 교류가 필요 없어지니 각종 서비스산업도 필요 없어지겠죠. 집집마다 비싼 고성능 공작기계 갖춰놓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라 사회적 분업은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요? 천만에요. 인공지능은 복잡한 물건의 생산을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용이하게 만들기 때문에, 고도로 정교한 첨단 로봇들이 엄청나게 빠르고 저렴하게 보급될 수 있습니다. 집집마다가 차고 넘칠 정도로요. 그리고 그나마 남아있을 집약적 공업과 유통업도 모두 로봇이 담당하게 되겠죠.

하지만, 이런 풍경은 어디까지나 미래의 한 가능성일 뿐입니다. 미래는 이보다 훨씬 더 암울할 수 있습니다. 경제권력 집중이 심해지면 기술 엘리트와 일반 대중이 경제적으로 완전히 분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묘사한 ‘도깨비 방망이의 시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먼저 도깨비 방망이를 만들어 대중에게 보급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과연 그런 일을 할 만한 동기가 있느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즉, 일단 기술 엘리트들이 다른 인간의 도움 없이 자신들의 욕구를 모두 충족할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하위의 ‘기술 천민 대중’들에게 신경쓸 이유가 없게 되는 거죠. ‘기술 천민’들이 ‘기술 엘리트’들을 위해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는데, ‘기술 엘리트’들이 뭐하러 ‘기술 천민’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신이 소유한 생산 및 기술 수단들을 써 주겠습니까? 지금 빈부격차가 극심한 일부 국가들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아예 ‘그들만의 리그’를 따로 만들어 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영화 ‘엘리시움’에 묘사된 것과 같은 상황이 실제로 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생산력이 늘어나면서 사람들 사이의 기술과 자본 격차가 급속도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생산력 증가는 소수의 생산 업체가 전세계의 수요를 모두 충족하는 걸 가능케 하기 때문에 생산이 극도로 집중됩니다. 한 줌에 불과한 수의 공장에서 지구상의 모든 스마트폰, 자동차, 선박이 제작되고 있고, 신설되는 공장들은 이미 인간 직원이 거의 필요 없을 정도로 자동화 비율이 높습니다. IT 분야는 이 집중도가 더 심해서 구글의 검색 점유율은 70%가 넘고 아마존 혼자서 미국 전자상거래의 절반 가까이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생산력은 인류 전체의 수많은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과 기술 수단이 극소수 엘리트의 손에 집중되다 보니 그들의 취향과 변덕에 심각하게 좌우될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세계 상위 0.1% 부자들의 소득이 대략 하위 30억 명의 소득과 맞먹는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상위 0.1% 부자들이 자신의 소득 절반을 나눠주기만 하면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돈으로 뒤를 닦을 정도로 부유할 것입니다), 세계 인구의 40%가 소득이 절반씩 늘어나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셈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는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벌어지고 있습니다. 소외층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부유층의 관심이 그저 지나가는 가십거리 수준에 불과하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겁니다. 생산력은 지금도 세계의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정도로 충분합니다(적어도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에서 보이는 비참한 삶보다는 훨씬 나은 수준으로요.). 문제는 분배고 권력독점이죠.

이러한 상황에서, 수많은 부작용이 뒤따르는 폭력적인 수단을 쓰지 않고 일반 대중이 소외를 벗어날 길은 무엇일까요? 경제적으로 ‘무가치한 존재’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무가치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요? 생산과정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런데 미래는 인간이 생산을 하는 시대가 아니라면서요? 자본이 생산을 다 하는데 어떻게 생산과정에 참여하나요?

바로 그겁니다. 자본을 통해 생산과정에 참여해야 합니다. 즉, 모두가 투자자가 되어 생산을 독점하는 기업의 지분을 나눠가질 수 있게 하는 정책이 필요한 거죠. 모두가 투자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자본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모두가 투자자의 안목을 가지고 있거나 안목 있는 대리인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일자리를 통한 분배에서 자본을 통한 분배로분배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자본 분배가 중요한 이유는 앞으로는 노동력이 아니라 소유한 자본이 인간의 ‘생존 가치(잔혹한 표현이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지금도 전세계의 수많은 저소득층이 방치되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시장에서 ‘생존 가치’, 즉 ‘사회의 자원을 그들의 생존을 위해 써달라는 요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상인들은 돈 없는 사람에게 음식을 팔지 않는다는 겁니다.)’를 보장할 거의 유일한 수단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소득은 날이 갈수록 그가 소유한 자본으로부터만 나오게 되겠죠. 자본은 사회의 생산력을 자신을 위해 써 달라는 경제적 투표권입니다사회적 생산력을 쓸 결정권이 소수 기득권의 손에 집중돼 있으면, 명품옷과 명품차, 4대강, 세빛둥둥섬에 사회의 자원이 쓰입니다. 결정권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분배돼 있으면, 폐지 줍는 노인이나 의식주 산업, 생활을 편리하게 만드는 기술, 안전시설 등에 쓰입니다. 자본이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 이명박-오세훈-안철수의 가치와 사람 중심의 가치 중 어느 쪽이 사회를 지배할지 판가름나게 됩니다. 자본의 분배 구조는 인공지능혁명의 향방을 누가 결정할지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바로 이 점이, 제가 입만 열면 ‘4차산업혁명’에 대해 떠드는 안철수보다, 적폐청산과 복지를 강조하는 문재인을 인공지능혁명에 대비할 적임자로 더 높이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안철수에게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경제 철학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의 비웃음을 샀던 안철수의 ‘전국 홀대론(주: 방문하는 곳마다 ’문재인이 이 지역을 홀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던 안철수의 행보를 조롱하기 위해 나온 표현)’은 사실 안철수가 그냥 지역주의 조장하고 문재인 까고 싶어서 무턱대고 들고 나온 게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에는 안철수의 근본적인 경제 철학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이 경제 철학이 지극히 편협하고 근시안적이며 기득권 중심적이라는 거죠.
안철수의 경제 철학이란바로 개발주의와 성장주의입니다. 안철수의 ‘전국 홀대론’은 사실 문재인의 복지 중시 정책을 겨냥해 복지보다는 SOC투자에 사회의 자원을 사용해야 한다는 비판입니다. 전국적으로 이렇게 개발할 곳이 많은데 왜 한가하게 ‘퍼주기 복지’ 따위에나 예산을 낭비하느냐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이명박이나 오세훈과 다를 바가 없는 사고방식입니다. 그의 재벌 비판도 그냥 재벌 중심 성장 패러다임이 낡았으므로 이제 IT창업 중심의 성장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수준이지, 성장주의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기업 주도의 성장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나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도 거의 바닥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보수언론들이 안철수를 그토록 좋아하는 거죠.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안철수의 낮은 인식은 인공지능혁명과 관련해 특히 문제가 됩니다. 자본을 통한 분배가 결국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대대적인 부의 재편을 뜻합니다. 당연히 기득권층의 엄청난 반발이 예상됩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점점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질 것이기 때문에 예측 불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언제 누구의 머리에서 어떻게 산업의 향방을 가를 아이디어가 나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소수의 공룡 기업보다는 다수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연구자들이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장기적이고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해야 합니다. 이것 역시 우리나라의 기득권들이 별로 좋아할 만한 소리가 아닙니다. 요는, 앞으로 인공지능혁명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엄청난 기득권의 반발을 극복하고 소외되는 이 없이 모두가 새로운 사회적경제적 환경에서 공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하는데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바로세우는 게 필수적이라는 겁니다. (문재인이 추진하는 적폐청산이 중요한 이유죠.) 안철수에게는 여기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인공지능혁명은 사회의 대대적인 개혁을 불가피하게 만듭니다. 개혁을 통해 수립될 새로운 사회가 극소수 기술 엘리트가 대중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소외되는 이 없이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에 되기 위해서는개혁 과정이 민주적이고 인권지향적이어야 합니다. 이명박 같은 자가 이명박 같은 식으로 개혁을 주도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확립이야말로 인공지능혁명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신경써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인공지능혁명에 대한 대비책으로 국민 모두가 일정 수준의 자본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은 사회의 체질을 바꾸는 장기적인 프로젝트입니다. 당장 인공지능혁명이 도래하지 않았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으면나중에 가서 후회하기엔 이미 늦을 것입니다. 멀리 내다보고, 많이 연구하고,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시작해야 합니다.



보론: 디지털 경제에서 분배정책이 중요한 이유

우리나라가 그동안 지나치게 성장에만 치우쳤기 때문에 분배에 좀더 주력해야겠지만, 새로운 산업을 일으켜 분배를 위한 파이를 키우는 일도 여전히 병행해야겠죠. 중요한 점은 분배가 새로운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디지털 경제는 다품종 소량생산이 특징입니다. 정보 네트워크의 발달로 도처의 소규모 수요를 소규모 공급으로 연결하는 게 가능해지면서, 투자도 소수의 대형 투자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보다 다수의 소형 투자자가 곳곳에 산재한 작은 수요들을 찾아 충족해 주는 패러다임이 여러 모로 유리해졌습니다. 따라서 자본이 소수의 거부(巨富)가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분배돼 있고, 그 국민들이 각자 자신이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다양한 분야에 투자를 하면(그 투자 대상은 아무래도 정보 획득이 용이한 국내 산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겠죠), 국내의 창업 활동은 새로운 활기를 얻고 그것이 다시 사회적 부를 늘리는 선순환이 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 경제는 대단히 역동적이기 때문에 불안정하기도 합니다. 한 가지 아이템을 가지고 오랫동안 장사를 하기보다는, 짧고 굵게 벌었다가 긴 휴지기를 갖는 일도 상당히 흔합니다. 개별 사업자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시장 강자의 횡포에도 취약합니다. 따라서 디지털 경제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적 안전망 구축과 정부의 기본적인 인프라 지원, 그리고 공정거래 감시 시스템이 필수입니다.

디지털 경제에는 독점화 경향과 분산화 경향이 공존합니다. 일단 플랫폼 제공자는 슈퍼 갑의 지위를 획득하고, 그밖에도 실력과 자본이 있는 사업자가 빠른 속도로 특정 분야의 시장을 잠식해 나가는 일이 흔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시장이 워낙 역동적이기 때문에 틈새시장이 끊임없이 생겨나 신규 참여자의 활로를 열어줍니다. 공룡과 개미가 끊임없이 고양이와 쥐 놀이를 하는 전장이 디지털 경제 플랫폼이고, 앞으로 인공지능혁명이 완료되기 전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경제 터전입니다. 이 전장에서 벌어놓은 스코어가, 인간에 의한 경제활동 대부분이 중단되는 인공지능혁명 시대에 얼마만큼의 지분을 가지고 진입하게 될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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